근황

부서 이동
올해로 입사 18년 째인데(헉 벌써) 그동안 몇 번 부서를 옮기긴 했지만 이번 처럼 자의반으로 부서를 옮긴 건 처음인 듯. 그 동안은 늘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부서를 옮기거나 부서가 합쳐지거나 하는 변화를 겪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오랜 동안(몇 명은 입사 동기도 있고, 길게는 10년 넘게 같이 한 친구도 있고) 알고 지낸 사람들과 많이 익숙한 업무를 떠나 새로운 분야(기존에 하던 업무도 계속 한다는 건 비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이동이 힘들 듯 했다.

왜 옮겨야 했나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기존 조직에서 해야 하는 일 중 점점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업무가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존 부서의 문제가 아니라 그 부서를 포함한 더 큰 조직의 경향과 화두와 관련된 변화라…) 마침 지금 있는 새로운 부서에서는 기존 부서보다 많이 개방적이고, 조직이 작아 이미 화석화된 기존 조직과 다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달이 지난 지금

다행히 기대대로 기존 조직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다. 촉박한 개발 일정이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개발자들의 목을 죄는 현장 이슈 등이 없어 그런지 마음은 여유롭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하나같이 착하고 모난 친구가 없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내가 할께요”라는 말도 듣고. 한동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책임”이란 말로 사람들의 자발성을 죽이는 문화에서 일해서 그런지 참 낯선 느낌이다.

새옹지마
이 바닥이 그리 넓지 않아 그런지, 한 회사에서 오래동안 있어 그런지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지금 일하는 파트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원일이형이나 박모 수석도 있고, 한동안 같이 일하고 다시 만난 박모책임도 있고. 그리고 랩장은 입사때 봤던 옆 부서 선배. 몇 년 전에 다른 부서원으로 업무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때는 다소 불편한 관계였는데(자꾸 책임을 넘기려는 모습을 보여서) 어쨌든 다시 같이 일하게 됐다. 또 옆 파트에는 예전 WiMAX 개발할 때 같이 했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모두 다른 파트였지만 그래도 다들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라.

그 위 그룹장은 또 10년 전에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때 같이 일했던 분이다.

이렇게 될 지 어찌 알았을까. 역시 평소에 잘 해야 한다. 누구를 어떻게 만날 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Who knows?

조금은 방향을 꺽어 낯선 분야를 하고 있어 기존 업무 보다는 고생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가졌던 기존 조직에서 아쉬웠던 점을 조금은 바꿔볼 수 있는 분위기와 사람들이 있어 희망을 꿈꾸본다.

Standing desk

이상하게 집에서 책상에 앉으면 집중이 안된다. 집중도 안되지만 앉아있는 거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고 예전부터 생각하던 standing desk를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모니터 높이를 높여야 하니 일단 책상 위에 대충 책당 상자를 올렸다. 하나를 올리고 그 위에 모니터를 두니 대충 높이가 맞는다. 다행히 모니터 높이가 조절되는 모델이라 적당한 크기로 화면 위치를 맞출 수 있었다. 그 옆에 똑같은 상자를 하나 올려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놨다. 음 이것도 높이가 적당하다.

남은 문제는 맥미니용 키보드와 마우스인데 일단 키보드는 대충 남는 공간에 놨는데 모니터는 마땅한 장소가 없다. 모니터 옆에 두려 했는데 모니터 전원 길이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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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사용해 보니 다리가 아프긴 하다. 그래도 요즘은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다리 아플 때까지의 시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듯 하니 일단 진행해 볼란다.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얼마전에 읽은 고영성의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정형 – 지능은 변하지 않는다
성장형 – 지능은 좋아질 수 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식의 변화가 주는 효과는 크다

중학교에서는 고정형 아이들의 성적이 급속히 떨어지고 지속적으로 하양곡선을 그림.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교 과정과 질적으로 더 어려운 학과 공부에 직면하므로 실패와 좌절을 할 가능성이 더 많은데 고정형 학생들은 실패와 좌절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

힘든 상황에서 더 큰 영향을 준다.

두뇌는 근육과 같이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우듯 두뇌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필요한 건 시간과 노력이다.

일단 믿어 보자.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다.

명언

다독을 하려면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뇌는 책 읽는 뇌로 변할 수 있다.

“난 책하고 안 맞아”라는 생각이 들때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한번 시도해 보자.

내 편견을 자극하고 그럴듯 해 보이면 명저로 생각하기 쉽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 알려준다고 다 명저는 아니다.

수용적 사고,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수렴성 지능과 발산성 지능.

수렴적 사고는 위기가 없으며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세계에서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쳐오고 변칙적인 상황이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새로운 상황에서는 새로운 생각, 곧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하며, 실제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최고의 부가가치를 내고 있는 것들은 모두 창의적 사고의 부산물을 통해서다.

위기의 시절에는 좀 나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책을 선정했으면 챕터별로 정리를 하되, 그냥 요약하지 말고 관련 주제를 담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완성된 글로 만들어라.

내 생각을 곁들이고, 책에 없는 내용을 “찾아서” 함께 정리하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Seeing is believing. But sometimes not
‘본다’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 행위이다. 객관적 시선이란 허상이며, 우리에게는 오직 주관적 관점만이 있을 뿐이다.

분명히 ‘본 것’이라고 다 사실은 아니다. ‘본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고, 맥락을 모른 체 본 것은 ‘주관적 판단’에 의해 ‘사실’과 다른 기억을 갖게 할 수 있다.

‘생각의 탄생’에서는 ‘명백히 달라 보이는 두 개의 사물이 중요한 특질과 기능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학문과 예술작품, 불후의 과학이론, 공학적 발명을 이루어내는 일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좋은 부모는 아이에게 안정적인 기지를 마련해 주고, 아이가 그 기지를 거점 삼아 마음껏 세상을 탐구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라고 말했다.

부모의 의무

고통의 경중보다 고통에 대한 대응이 행복과 불행을 갈라 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임을 밝혀냈다.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행복을 빼앗기지 않는다.

상황보다 상황에 대한 대응이 그 ‘상황’으로 인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 학습 후 10분 후부터 망각 시작
  • 한 시간 뒤에는 50%
  • 하루 뒤에는 70%
  • 한달 뒤에는 80%를 망각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학습을 하더라도 하루가 지나면 열에 일곱은 사라진다.

잊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지 말고 반복해서 읽거나 적어서 보완하자

글은 자신이 제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근거를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 보이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좋은 자료를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에 성패가 좌우된다. 자료가 충분하면 그 안에 반드시 길이 있다. 자료를 찾다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논리 싸움. 근거는 곧 총알

퓰리처. “무엇이든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일단 짧아야 눈이 간다